金㙆을 중심으로 하는 교지류를 비롯하여 시권ㆍ책문ㆍ방목ㆍ소지ㆍ입안ㆍ물목ㆍ유묵첩ㆍ일기류 등으로, 이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교지가 46점, 시권 4점, 책문 2점, 방목 2책, 명문 1점, 상소 1점, 소지 5점, 통문 1점, 성문 1점, 입안 1점, 관문 1점, 유지 9점, 물목 2점, 노문 2점, 치제문 1점, 가장초 1책, 간찰 유묵 3첩, 일기 3책, 세계 1첩, 계첩 1첩 등이다. 대전오피 비롯하여 시권, 책문, 방목, 명문, 상소, 소지, 입안, 물목, 유지, 관문, 유묵첩, 계첩, 일기류 등으로 그 종류가 다양하지는 않다. 종가에 보관되던 고문서는 ‘과거, 임용’ 관련 31점을 비롯하여 ‘소송, 청원’ 2점, ‘관혼상제’ 5점, ‘개인’ 1점, ‘가계, 문중’ 16점으로 총 55점에 이르고 있다. 수집된 자료는 총 281건에 5,705장(7,877면)이다. 이를 행정구역별로 보면 충청남도 2개 시(공주시․논산시), 3개 군(금산군․연기군․청양군)과 대전광역시 4개 구(동구․서구․중구․유성구)가 해당된다. 이 집안에는 50점의 시문이 남아 있는데, 성리학 이론을 정리한 글, 금강산이나 동해안을 여행하고 남긴 기행문, 다양한 시회에서 작성된 시 등이 있다. 이로 인해 이 지역의 동학 및 천도교 관련 연구가 매우 저조하며 근현대 변혁운동 및 민족주의 운동 부분에서 동학 및 천도교의 역할 부분이 거의 공백처럼 남아 있다. 기타 최진립의 묘소가 있는 烏池淵에 대해서 烏池淵墓位田畓大帳謄錄이 있다. 서원의 건립과 운영에 대한 자료로는 먼저 서원의 창건과 내력을 기록한 考往錄이 있다.

경작일기는 6반보 넓이의 논에 대해 음력 3월 1일 앙판을 만든 데서부터 8월 15일 수확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기록한 글이다. 특히 동지역의 주민센터는 전무한 실정이며 읍면사무소의 경우 간혹 일제시대 면 재산관련 서류철, 토지개혁관련 자료, 면세일람 등이 남아 있었다. 우선 양월문중에서 소장하고 있는 자료는 敎旨, 祿牌, 解由文書, 戶口單子, 所志, 明文, 試券, 望記, 行狀 등이 있다. 퇴계 이후 金誠一­張興孝­李玄逸­李栽­李象靖으로 이어지는 학통을 이어받은 柳致明의 문하에서 수학하였으며, 1893년 遺逸로 천거되어 의금부 도사에 임명되었다. 뿐만 아니라 원부의 후손 역시 그의 유훈(遺訓)을 받들어 대대로 出仕하지 않는 것을 내력으로 삼음으로써 그의 호 악은에 걸맞는 은거의 미덕을 발휘하면서 재야에서 대대로 가계를 계승해 온 것으로 보인다. 1781년에 스승 이상정이 죽자 스승의 遺文을 정리하였다. 마을문서는 대표적으로 洞案와 鄕案類가 남아 있다.

아울러 院生錢傳與記가 있는데, 이는 원생들이 서원에 들어올 때 낸 금전에 대해서 관리, 운영하는 기록으로써 서원의 자금 운영을 아는데 중요한 자료이다. 특히 정안면의 경우 1952년 면의회 회의록이 남아있는데 이는 공주지역에서 유일한 면의회 활동상을 보여주는 기록물이다.崇烈祠儒案이나 龍山書院儒案은 인근 최치원을 모시는 서악서원에서 등서해온 것인데, 이는 초기 서원의 운영과정에서 자체적으로 명부가 체계화되어 있지 않은 상황에서 갖추어둔 것으로 보인다. 이조리에는 현재까지 종가와 종파의 사람들이 살고 있으며 종가 바로 옆에는 최진립을 모시는 龍山書院이 자리 잡고 있다. 또한 이거목록 같은 자료는 이 가계의 경제 사정을 다른 경제자료 없이도 대강 짐작케 하는 내용을 담고 있어서 또한 나름대로의 사료적 가치가 있다. 이미 앞에서도 살펴보았듯이 교지나 별급 명문, 김굉의 상소문, 입후 성문, 유지, 노문, 상현계첩, 이거목록 등은 김굉 자신과 그를 중심으로 하는 가계의 변화 모습을 잘 연결시켜 주고 있다. 교지를 제외하면 양에 있어서도 소량으로 평균적인 문중의 소장 고문서량에 비견할 바가 되지 못하지만, 이 가계의 소장 고문서 중에는 자료의 성격뿐만 아니라 이 가계의 내력을 명확히 밝혀주는 몇몇 주요 자료가 있다. 이 방법을 선호하는 이유는 예전에는 오피스를 설치하고 또 업데이트를 해야 했는데 지금은 최신 버전으로 바로 인스톨이 되니 따로 업데이트를 할 필요가 없어서 편해서 입니다. Office LTSC 2021은 볼륨 라이선스 계약을 통해 조직에서 사용할 수 있는 Microsoft의 생산성 소프트웨어의 최신 버전입니다.

그러나 이 정책 설정은 2019년 2019의 볼륨 라이선스 버전에서 이미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Office 고려되지 않습니다. 따라서 이 지역 변혁운동 및 민족주의 운동의 구체적인 내용을 채우기 위해서는 이 지역 동학 및 천도교 자료들을 조사 발굴하고 정리하여 그 연구 토대를 구축하는 것이 중요하다. 지역사 연구 및 당시 행정체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1차적으로 확인해야 할 원자료들이다. 따라서 본 사업에서는 1894년 동학농민전쟁 당시 起包地였으며, 관군 및 일본군에 의해 많은 희생자를 낸 태안지역을 중심으로 예산, 홍성, 서산 등을 조사대상 지역으로 설정하였으며, 주로 후손 및 기념단체 등을 방문하여 조사하였다. 뿐만 아니라 1894년 이후 동학조직 재건과 천도교 창건의 조직적 기반을 제공하기도 하였으며 일제시기 천도교 조직을 중심으로 3.1운동과 1920․ 또한 경산시는 대구로 진입하는 관문의 역할을 하는 곳으로, 금호강을 끼고 있어 강 일대를 중심으로 과수, 채소, 화훼 등이 일제시대부터 농업기술이 활발하게 이루어진 지역이다. 지금까지 소개된 1차 조사 당시인 1998년 조사 자료와 2차 조사를 거쳐 2006년에 국사편찬위원회에 기탁된 자료들 중 간찰촵위장촵제문 등이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높다. 왜냐하면 전통시대의 연망(連網) 형성에는 통혼권과 함께 사우문인(師友門人) 관계의 비중이 매우 컸기 때문이다. 전통시대의 영주는 삼국시대 고구려와 신라의 접경에 위치하여 정치세력의 변동에 따라 큰 변화를 겪었으며 그로 인해 순흥 읍내리 고분벽화에서 잘 나타나듯 다양한 요소가 섞인 독특한 문화를 형성하였다.